당신은 강제로라도 거래를 이행하기로 결심한다. 노숙자는 저항하지만,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인지 힘없이 끌려 나간다.
다만 이상하게도, 문을 넘어설 때 노인의 무게보다 훨씬 큰 짐이 당신을 짓누르는 느낌이 든다. 당신은 이를 악물고 최대한 힘을 내 노인을 문 너머로 끌고 나간다. 그리고 정류장에 발을 디딘 순간, 짓누르던 무게가 순식간에 가벼워진다.
“드디어”
어느새 당신 앞에 있던 노숙자는 사라지고, 큰 키에 타오를 듯한 짙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가 서 있다.
“당신은 누굽니까?”
하지만 남자는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다른 말을 꺼낸다.
“고맙네. 자네 덕에 드디어 목적지에 내릴 수 있게 되었어.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때론 저주가 되기도 하지. 그러니 구더기가 생길 것이 두렵더라도 장은 담궈야 해.”
“그렇습니까”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 나도 선물을 주겠네. 자 받게. 사진일세.”
당신은 남자가 내미는 사진을 받아든다. 빛바랜 흑백 사진은 어떤 여자를 보여준다.
“아마 여기에 오기 전에 악귀를 만났겠지. 죽음에도 포기하지 않는 존재일세. 하지만 이 사진을 잘 활용하면 자네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거야. 현명하게 사용하길.”
말을 마친 남자는 푸른 불꽃으로 타오르고, 푸른 불꽃은 배경을 집어삼킨다. 당신은 전시장으로 되돌아왔다. 아까의 기차가 허상인 것처럼 전시장은 어둡고 조용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물론, 약간의 초록빛 안개만 빼고.
당신은 시선을 아래로 돌려 손을 쳐다본다. 당신의 손에는 여전히 노숙자가 건네 준 사진이 남아 있다. 노인이 자신의 도움을 받아 나아간 것처럼, 자신도 도망치지 않고 문제를 마주해야 한다.
“다 보입니다. 나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