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시장의 과거 사진
<Bedtime Story>
먼 나라에 부유한 수집가가 있었어요. 그의 꿈은 나라에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었답니다. 수집가는 새로운 수집품이 들어오면 주변인들을 초대해 자랑했어요. 초대된 손님들은 한 마디씩 감상을 건넸어요. 몇몇은 질투심에 뾰족한 말들을 하기도 했죠.
“오, 아주 멋지군”
“이 정도야.. 우리집엔 저런게 널려있다고.”
그러던 어느날, 수집가는 유명한 평론가를 초대했어요. 분명 자신의 컬렉션에 감탄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수도의 멋들어진 옷차림을 한 평론가는 소문처럼 고귀하고 깐깐했어요. 평론가는 화려한 전시장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고, 진열대에 놓인 조각상을 보고는 콧방귀를 뀌었어요. 마지막으로 수집가의 기대어린 표정엔 헛웃음을 지었죠.
“보시니 어떻습니까?”
“참으로 초라하군요.”
“역시 안목이- 네?”
“초라하다고 했습니다. 겉은 화려하게 꾸몄지만 속은 텅 비어 있군요.”
수집가는 실망했고, 다른 미술관에 비해 값비싼 전시품이 부족해 평론가에게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어요. 수집가는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끌어 썼지만, 평론가의 반응은 변하지 않았고, 그는 좌절했어요. 설상가상으로 평론가도 고향의 별장으로 떠나버렸죠. 인정받고 싶은 대상이 사라지자 그의 열정은 팍 식어버렸어요. 지쳐버린 수집가는 이만 갤러리를 개장하기로 결심했어요.
하지만 소장품들을 보관해둔 건물을 둘러본 수집가는 좌절했어요. 값비싼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산 결과 컬렉션의 방향성이 이도저도 아니었던 거죠. 낙담하던 수집가는 아내에게 고민을 얘기했어요.
“이걸 다 정리하고 분류하려면 한세월인데, 과연 나는 전시회를 열 수나 있을까?”
남편이 쓸데없이 화려한 전시장에 매몰된 동안 회사 경영에 바빴던 아내는 퉁명스럽게 대답했어요.
“당신, 내가 항상 말했잖아. 무작정 사서 양만 늘리는 것보다 그걸 어떻게 정리해 보여주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당신이 옳았어.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이 전시장은 내 평생의 꿈이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철은 없어도 매사에 밝았던 남편이 잔뜩 풀죽은 모습이 안쓰러웠던 아내는 해결책을 제시했어요.
“전문 분야도 아닌데 혼자 고생하지 말고 똑똑한 인재들을 모아보는 게 어때? 그들을 고용하면 단기간에 그럴싸한 미술관을 완성할 수 있을거야.”
“당신 말이 맞아. 시간이 없으면 돈을 써서 사람을 모아야지.”
아내와 수집가는 해당 분야의 현자들을 불러 모았어요. 현자들은 역시 똑똑했어요. 막힘없이 방안을 내놓았죠.
“주변 미술관과의 미술품 거래를 통해 컬렉션의 방향성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컬렉션을 관리할 데이터베이스는 내가 설계하겠소.”
“몰입감 있는 전시들을 기획해보죠.”
“SNS를 이용한 홍보는 제게 맡겨주세요!”
다들 합의에 이른 듯했어요.
그때 부부의 어린 딸이 물었어요.
“근데 그러면 정리는 누가 해요?”
회의실은 정적에 휩싸였어요. 현자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죠. 지원할 사람은 없어 보였어요. 그 순간, 목소리 큰 누군가가 구석의 서기를 발견하고 소리쳤어요.
“서기! 저기 있는 막내 서기가 정리할 겁니다!”
그렇게 서기를 뺀 모두는 순식간에 합의에 도달했어요. 회의 결과에 만족한 부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5성급 레스토랑에 저녁식사를 하러 갔죠. 그리고 불쌍한 서기는 현자들의 계획에 따라 그 많은 자료를 기록하고 진열하고 보관하는 일을 총괄하게 되었답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에요. 이제 잘 시간이랍니다. 뒷얘기가 궁금하다고요? 부부가 고용한 현자들은 미술관 전시 작업에 들어갔어요. 그들이 완성한 전시장은 정말 환상적이었죠. 그럼 해피엔딩 아니냐고요? 하하, 아니랍니다.
왜냐하면 이야기 속 서기가 바로 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