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스테이지: 지하 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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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수로] 칠흑같이 어두운 지하 수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온 당신은 깜깜한 어둠을 바라본다. 물소리가 바로 오른쪽에서 들리는 것을 보니 삐끗하면 물에 빠지는 상황이다.

‘우측은 수로. 그렇다면 좌측은?’

좌측 허공에 손을 허우적거리자 벽이 짚인다.

‘왼쪽 벽에 손을 올리고 쭉 따라간다’

빠르게 결정을 내린 당신은 좌측 벽에 손을 짚고 쭉 걸어가기 시작한다. 40분 정도 걸었을까? 벽이 오른쪽으로 90도 꺾이는 구간이 나온다.

‘모퉁이인가?’

당신은 벽을 따라 돌아 다시 걷기 시작한다. 저 멀리 빛이 한 점 비치는 듯하다.

‘정황상 저게 지상으로 나가는 출구일 확률이 높다’

당신은 혹시라도 중간에 수로가 나타날 것을 경계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도 빛 한 점 없던 아까보다는 속도가 빠르다. 한 20분 정도 걸었을까? 빛의 선으로 만들어진 직사각형이 보인다.

‘다 왔다. 제발-‘

당신은 문고리를 찾아 허공에 손을 펼친다.

‘잡았다’

“잡았다”

“?”

당신이 문을 밀기 전에 문이 확 열리면서 당신은 앞으로 엎어진다. 코에 축축한 흙이 닿는다. 당신은 항의하려다 뒤늦게 찾아온 깨달음에 멈칫한다.

“흙?”

얼굴에 닿은 흙과 맑은 공기에 당신은 지상으로 나왔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이제 악몽같은 공간에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도도 잠시,

“거기, 머리 위로 양손을 들고 이름과 목적을 말하세요.”

“네?”

당신은 고개를 들어 화자를 바라보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갑작스럽게 빛을 만나 어지럽기만 하다.

“저는 이 갤러리의 경비원입니다. 당신은 사유지를 침범했습니다.”

“오-오해입니다! 다 설명할 수 있어요!”

화자의 표정을 읽기에는 아직 눈이 빛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당신은 가만히 서 있는 경비원의 자세에서 암묵적인 허가를 읽는다.

‘그런데 경비원이 내가 겪은 일을 믿어줄까? 미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당신은 순간 진실을 말해야 할지 아니면 실수로 이곳에 들어왔다고 얘기할지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