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쉬면서 익숙한 제목의 시집 한 권을 펼쳐 들었다. 국어 교과서의 단골손님인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였다. 30년간 낸 아홉 권의 시집 중에서 가장 아끼는 시 61편을 골라 출판한 시화선집이었다.
시화선집은 시와 그림이 함께 수록된 시집을 가리킨다. 과거 문인들이 그림 옆에 시를 적었듯, 시화선집도 시와 비슷한 분위기의 그림을 짝지어 선보인다. 이 시화선집에서 시의 옆자리는 송필용 화백의 그림이 채웠다. 선명한 색감으로 그려진 동양적인 풍경은 자연을 담은 도종환 시인의 시와 꽤 잘 어울리더라.
도종환 시인은 자연을 통해 삶의 태도를 배우는 듯하다. 깊게 흐르는 물을 보며 깊은 사랑을 얘기하고, 바위 틈새에서 자라난 나무들을 보며 희망을 노래한다. 때로는 자연에 본인의 감정을 투영하기도 한다. 그는 시 <혼자 사랑>에서 홀로 피었다 지는 꽃을 보며 짝사랑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 옆은 노란 반딧불이가 밝히는 초록색 밤, 아름답게 피어난 붉은 꽃들 (그림 <보름달과 반딧불이>)이 장식한다. 개인적으로 시화선집의 시 중에선 <여백>과 <나무>, <우기>가 제일 좋았다. <우기>를 읽을 땐 궂은 날에도 묵묵히 비를 뚫고 날아가는 새가 머리에 그려지더라.
이처럼 도종환 시인의 시는 너무 무겁거나 해독이 필요하지 않다. 그가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편안함을 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의미가 복잡하고 아리송한 시가 매력적일 때가 있다면, 반대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시가 필요할 때도 있다. 그의 시는 독자들을 위로한다. <여백>에서 얘기하듯 바쁜 삶 속에서 잠깐의 숨 쉴 공간을 만들어주는 시들인 것이다.
시 자체에 대한 감상과 별개로, 시를 쓰고 그에 맞는 그림을 붙이는 행위가 참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화선집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시인으로 등단하는 것은 힘들어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은가. 너무 낙서같다 싶으면 솜씨 좋은 친구에게 그려달라고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