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 도심 속 표류하는 현대인의 이야기, 김씨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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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가로 밀려온 쓰레기들은 똑같이 파도에 밀려온 김씨의 처지를 부각시킨다

*스포일러 포함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한강에 뛰어들어 자살하려다 밤섬에 표류하게 되었다. 도시로 돌아가려 하지만 수영은 못하겠고, 그렇다고 다시 목을 매려 하니 민방위 훈련 때문에 시끄럽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으니 독버섯일지 모를 것들도 막 먹고, 옷도 없이 맨 몸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섬에서 짜빠게티 스프를 찾아버렸다. 눈 앞에 짜장면이 아른거린다. 죽기 전에 짜장면 한 번 먹으면 여한이 없을 텐데.

한편, 그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방문을 잠그고 그 안에서만 살아가는 여자. 얼굴의 화상으로 인해 대인기피증(추정)에 걸린 듯하다. 화장실은 부모님이 출근하면 가고, 밥은 옥수수 캔과 생라면으로 해결한다.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싸이월드에서 남의 옷 사진을 도용하며 시간을 보낸다. 댓글의 관심을 받는 게 하루 일과.

그럼에도 집이 꽤 사는지 한강변의 아파트에 살면서 망원경과 대포 카메라로 달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는다. 어느 날 민방위 훈련으로 텅 빈 거리를 찍다가 표류한 남자를 발견한다. 이후 큰 맘을 먹고 남자와 소통할 방법을 찾아 밖으로 나간다. 물론 오토바이 헬멧과 밤의 어둠을 이용해서.

관전 포인트

<김씨 표류기>는 2009년작이지만, 지금 봐도 컴퓨터 그래픽이 깔끔하고 연출이 좋다. 특히 초반부에 섬을 수영해서 탈출하려던 김씨 남자가 물에서 허우적거리면서 과거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장면이 예술이다.

수면 위로 겨우 올라와 보는 장면들은 회사가 망해서 다시 면접을 보러 다녔던 경험, 돈이 없어서 여자친구에게 차인 기억, 대출 광고 등으로 그가 일평생을 사회에서 뭍에 오르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밤섬에 표류하고 나서야 드디어 단단한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는 사실은 돈 없는 현대인의 비애를 잘 보여준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김씨 남자는 짜장면을 먹겠다는 일념 하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사실 도심에 있을 때는 중국집에 가서 싼 값에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었지만, 표류한 이제는 쉽지 않은 목표이다. 이를 위해 고생하는 남자를 본 김씨 여자는 짜장면을 배달시켜 준다. 이 때 배달부가 욕하며 오리배를 타고 밤섬으로 향하는 장면은 큰 웃음포인트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면 좋을 것 같아 넘어가지만, 결국 작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무리 사소한 목표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내는 것이 희망을 찾기 위한 첫 단추라는 것이다.

맺음말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에는 손익분기점을 넘기는데 실패했지만, 외국은 물론 지금의 감상자들에게는 호평받는 작품이다. 사실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CG 제작비가 꽤 투입되면서 손익분기점이 필요 이상으로 높아진 측면도 있다. 그렇게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담담한 유머와 좋은 메시지, 미장센까지 골고루 갖춘 훌륭한 작품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요즘 들어 화려한 액션과 사이다를 입에 부어주는 영화들은 점점 많아지지만, 희망을 주는 영화는 흔치 않다. 그런 영화를 찾아 표류하던 관객들에게 안식처가 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