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6] 스릴러와 유쾌함 그 사이, 해피 데스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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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와 유쾌함 사이에서.

*스포일러 포함

저예산과 타임루프물

타임루프물을 접할 때면 경제적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 번째 회귀, 두 번째 회귀, 세 번째 회귀… 같은 세트장에서 같은 배우를 쓰면서 상황만 다르게 진행하면 되니까. 물론 같은 장면이라도 감정선을 다르게 해야 함을 고려하면 생각만큼 쉽진 않겠지만, 저예산으로 시도하기 좋은 포맷임은 분명하다.

실제로 2017년 작품인 <해피 데스 데이>도 500만 달러를 넘지 않는 제작비로 무려 1억 2천 5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파라노멀 액티비티>를 내놓은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의 명성에 걸맞는 수익률이었다. 영화는 단순하지만 매력적인 아이디어에 훌륭한 연기와 연출을 더해 흥행하였다. 직관적인 제목도 한 몫 했다. 축하 받아야 할 생일날, happy birthday를 해피 데스 데이로 변형해 작품의 컨셉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스토리

흔히 말하는 퀸카인 대학생 트리는 생일날 가면을 쓴 살인마에게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보니 그 날 아침이다. 처음에는 꿈인가 싶었지만, 또 죽고 돌아오면서 생일날에 갇혔음을 알게 된다. 수차례의 루프를 통해 어떤 행동을 해도 살인마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은 트리는 살아남기 위해 죽음의 원인을 찾아내서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관전 포인트

타임루프의 장점은 반복되는 장면 속에서 주인공의 성장을 강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홀로 하루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캐릭터는 압축된 성장 서사를 갖게 된다. 영화 초반에는 벌벌 떨기만 하던 트리도 루프를 반복하면서 총과 칼을 들고 살인마에게 반격한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주인공이 악당에게 맞서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회귀는 인격적인 성장의 계기도 된다. 유부남인 의사와 불륜을 저지르고, 룸메이트를 포함한 주변인들을 무시하던 트리는 악몽같은 생일날에 갇혀버리면서 변화하게 된다.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주변인들에게 못나게 굴었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한다. 가면 뒤 살인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자신에게 원한을 가질만한 사람이 누굴지 고민했던 시간도 변화에 기여했을 것이다.

죽음과 부활을 연결하는 연출 또한 인상적이었다. 타임 루프의 세이브포인트는 남자 기숙사의 침대 (전날 파티에서 만난 남학생 카터가 술에 취한 그녀를 재워주었다)이다. 침대에서 깨어나는 장면은 여러 차례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트리가 살인자의 망치에 맞고 회귀하여 침대 위로 쓰러지는 전환 컷이 기억에 남는다. 쓰러지는 트리에 맞춰 카메라를 회전시켜 전환의 매끄러움을 살렸다.

맺음말

<해피 데스 데이>의 장점은 분위기가 마냥 공포스럽거나 무겁지 않다는 데 있다. 그 기반이 마니악한 슬래셔 장르임에도 유쾌함이 섞여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루프 중간중간 주인공의 유쾌한 행동을 통해 분위기를 환기하는데, 배우 제시카 로테가 똘기 넘치고 기쎈 트리를 찰떡같이 연기해내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준다.

물론, 제작진은 이 영화의 장르가 스릴러라는 사실도 잊지 않는다. 먼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살인자를 통해 긴장감을 주입하고, 회귀 끝에 통쾌하게 받아치는 멋진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관객을 몰입시킨다. 이처럼 <해피 데스 데이>는 호러 영화의 B급 감성과 하이틴스러운 로맨스,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까지 전부 담아낸 웰메이드 루프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