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이솝 / 주해 로버트, 올리비아 템플 / 옮긴이 최인자, 신현철 / 출판사 문학세계사 / 430p / 2021.03.20
이 책은 로버트 템플과 올리비아 템플이 에밀 샹브리의 <이솝 우화>(1927년 발간)를 번역한 것으로, 총 358편의 우화들을 담고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에밀 샹브리가 출간한 <이솝 우화>도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인물이라 추정되는 이솝의 이야기 모음집이다. 입으로 말한 이야기가 글로 기록되고, 기원전에 기록된 글이 현재까지 번역되는 모습을 통해 <이솝 우화>가 지닌 생명력과 가치를 알 수 있다.
이솝은 전쟁 포로로 노예 신분이었지만, 재치있는 우화를 통해 각종 토론들을 논파해내며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당시의 학자들이 언급한 횟수를 보면 수사학을 연마했던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그의 명성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다. 이름값이 있어서인지 어떤 이야기들은 이솝이 직접 만들지 않았음에도 그의 것이라 알려지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는 어린이들에게 삶의 교훈을 전달하는 이야기로 활용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문제 상황을 우회적으로 빗대어 논쟁을 승리하거나 청중을 설득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비정한 사회를 투영하다
저자들은 ‘어른을 위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약육강식의 사회를 투영한 이솝 우화의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실제로 이솝 우화를 뜯어보면 먹고 먹히는 동물들의 비정한 모습이 등장한다. 매 순간 내리는 선택에 목숨이 걸려 있었던 시대답다 할 수 있겠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인 지금도 약육강식의 법칙은 달라지지 않았기에 <이솝 우화>는 시대를 초월해 유효한 교훈들을 전달한다.
곰을 만나자 혼자 나무 위로 피신한 친구에게 의리 없다고 타박하는 <여행자들과 곰>이나, 닿지 않는 포도를 신 포도라 부르며 돌아서는 <여우와 포도송이>는 그중에서도 유명하다. 그 외에도 잔꾀를 부리다 고생을 자초하는 내용인 <소금을 지고 가는 당나귀>나 물질적 풍요로움과 마음의 평화에 대해 논하는 <들쥐와 집쥐>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물론 덜 유명하지만 확 와닿는 우화들도 있다. <나그네와 우연의 여신>에서 여신은 자다가 우물에 빠질 뻔한 나그네를 깨운다. 그러면서 만약 자신이 깨우지 않았다면 나그네는 우물 옆에서 잠든 자신의 어리석음이 아닌 애꿎은 신을 원망했을 것이라 지적한다. <늑대와 어린 양>에서 늑대는 어린 양을 잡아먹기 위한 명분을 늘어놓지만, 모두 반박당하자 먹고 싶으니 그리 하겠다는 본심을 드러낸다.
맺음말
“어른들을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이 못 읽을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이 상관없이 한 번쯤 정독할 만한 책이다. 애초에 수사학적인 용도로 만들어졌기에 잔혹동화로 불리는 민담처럼 선정적인 묘사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야기들이 쉽고 짧으며, 재미있어서 아이들이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다. 긴 세월을 살아남아 후대에게 전달된 고전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전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