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2] 스크린라이프 형식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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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크린라이프의 정의

‘스크린라이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컴퓨터, 태블릿, 스마트폰 등의 화면에서 진행되는 영화를 지칭한다. 기존의 영화가 사람의 표정과 몸짓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면 스크린라이프는 마우스 포인터나 깜빡이는 커서, 키보드 등을 감정 표현의 주요 수단으로 삼는다.

스크린라이프 형식은 호러/범죄 장르에서 처음 도입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주로 인터넷의 랜덤 채팅 사이트를 이용하다 해킹에 노출되거나 딥웹 범죄의 표적이 되는 모습들을 그렸다. 이처럼 처음에는 소재가 인터넷의 익명성과 해킹 범죄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이후 스릴러+가족 영화 <서치>, 좀비 아포칼립스 드라마 <Dead of Night>, 로맨틱 코미디 영화 <R#J> 등이 제작되며 다양한 장르로 확장되었다.

2. 스크린라이프의 연출

스크린라이프 형식은 독특하게도 인간의 표정과 몸짓이 화면의 중심부에서 벗어나 있다. 그 빈자리는 주인공이 바라보는 화면이 채운다. 이처럼 관객이 주인공을 관찰했던 (3인칭 시점) 기존 영화들과 달리 스크린라이프의 관객은 주인공의 몸에 들어간 듯한 (1인칭 시점) 체험을 하게 된다. 이는 스크린라이프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파운드 푸티지 장르에서 핸드헬드 카메라가 지닌 속성이기도 하다. 이런 1인칭 시점은 몰입감을 부여하지만, 인물의 표정을 확인하기는 어려워 관객들에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필요로 한다.

스크린라이프는 사진/동영상 앨범, SNS, 메신저, 뉴스 기사 등 다양한 소품을 사용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물론 화상 통화를 사용해 배우들의 연기 (목소리, 표정, 몸짓)를 온전히 비춰주는 장면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배우는 아예 비춰지지 않거나 웹 캠에 찍힌 얼굴만 구석에 작게 노출된다. 관객은 주인공이 보고 있는 정보는 직접 볼 수 있지만, 인물의 비언어적 표현에서 드러나는 감정을 포착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크린라이프 영화에는 관객들이 인물의 시선과 감정을 유추할 수 있는 컴퓨터 화면 위의 분신이 필요하다. 그 분신은 등장인물의 마우스 포인터와 키보드이다. 마우스 포인터는 주인공의 시선이자 몸짓이다. 마우스가 향하는 위치가 주인공이 바라보는 곳이며, 움직이는 속도는 긴박함, 주저함 등의 감정을 드러낸다. 인물이 무언가에 집중할 때는 클로즈업을 통해 부각하기도 한다.

예시로 <서치>의 주인공이 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을 살펴보자. 채팅을 썼다 지우고, 커서가 전송 버튼 위에 멈춰 깜빡일 때, 관객들은 그가 망설이고 있다고 느낀다. 한편, 컴퓨터의 종료 버튼으로 향하던 마우스 포인터가 다급하게 인터넷 창으로 유턴하는 장면에서는 인물이 그 순간 깨달음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3. 스크린라이프의 장점과 단점

스크린라이프는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요구하는 전통적인 영화 형식과 달리 훨씬 적은 예산과 인원으로 제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배우의 몸짓과 표정을 마우스 포인터나 커서로 대체하면서 연기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게 되었다. (대신 편집자의 부담은 늘어난다) 실제로 <서치>는 배우가 컴퓨터를 조작하며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만 먼저 하고 컴퓨터 화면은 편집 단계에서 만들어 합치는 방식을 채택했다. 사실상 연기의 일부분을 편집자가 기술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는 저예산 영화들이 반길 만한 부분이다.

단점은 2시간 내내 단조로운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는 관객이 느낄 피로도이다. 이를 위해서 <서치>에서는 CCTV 화면이나 내비게이션 앱 화면을 이용하는 등의 변주를 주었다. 결국, 창의적인 연출을 통해 관객들의 집중을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

맺음말

사실 스크린라이프라는 형식이 극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이미 관객들이 이러한 인터페이스에 익숙해졌다는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대중은 유튜브나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서 1인칭 시점의 화면을 시청하며, 카카오톡의 메시지 응답 시간이나 마우스의 움직임을 보고 사람의 감정을 유추할 수 있게 진화했다.

맥루한은 미디어가 메시지라고 말했다. 매체를 통해 전달하는 내용 만큼이나 그 형식에도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서치>를 스크린라이프가 아닌 전통 영화 형식으로 제작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현대인의 삶을 지금처럼 잘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가 삶의 재현이고 사회의 거울이라면, 스크린라이프는 온라인 공간으로 확장된 현대인의 삶을 가장 잘 비춰주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 공개된 17분 길이의 단편영화 <Noah> (2013)가 스크린라이프 장르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인 ‘노아’가 여자친구의 바람을 의심하며 페이스북을 허락없이 뒤지는 내용으로, SNS 시대의 어두운 면을 비판한다. 기분 나쁘게 현실적인 내용도, 동시다발적인 인터넷 문화를 표현한 편집도, 스크린라이프라서 가능한 방식으로 음악을 연출한 것도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