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원서를 준비하다 보면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해당 학과에 대한 어렴풋한 인상은 있지만 정확히 뭘 배우는지 모르거나, 학과 공부가 나와 맞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의 모 대학교 영문학과에서 전공 강의를 수강하는 학부생으로서 수험생이 궁금해 할 만한 부분들을 QnA 형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다만, 학교마다 학과 커리큘럼이나 교수법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틀 위주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내 경험담이 영문학과 진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Q1. 전공생들은 다 영어를 잘한다?
경험상 영문학과라고 다 영어를 잘하진 않는다. 다만, 영어를 기본적으로 읽고 쓰는데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 교수님들도 기본적으로 학생이 영어를 할 줄 안다고 생각하고 과제와 시험을 내기 때문에 영어를 못하면 내 학점이 나빠진다. 특히 매주 영어 텍스트를 읽어가야 하는데 영어를 싫어한다면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회화는 능숙하지 않아도 큰 문제없다. 주변에 외고 출신 동기들도 많았는데 영어 발음이 좋다고 학점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전달하려는 내용의 깊이와 성의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어로 발표를 해야 하는 경우, 유창한 영국식 발음을 할 줄 알면 멋있어 보이긴 한다.
Q2. 영문학과 수업은 무조건 영어?
영문학과 수업이 전부 영어 강의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영어 리딩이나 리스닝은 필요하다. 필자가 다니는 학교의 경우 한국인 교수님들과 외국인 교수님들이 섞여 있다. 외국인 교수님들은 당연히 영어로 강의를 하신다. 한국인 교수님들은 대부분 한국어 강의를 하시지만 가끔 영어로 수업을 하시는 분도 있다. 강의에서 사용하는 자료는 대부분 영어이고 시험도 영어로 친다.
처음 입학했을 때에는 영어를 조금 못해도 시간표를 교양과 개론 강의들로 채워 버틸 수 있지만, 2학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전공 강의들을 들어야 하므로 실력을 키워야 한다.
Q3. 영문학과에서는 뭘 배우나?
영문학과에서는 보통 영문학과 영어학(언어학의 계열)을 배운다. 영문학 파트에서는 영미권의 문학을 읽고 분석하는 법을 배운다. 이때, 단순히 문학작품을 읽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이에 대한 비평을 에세이로 작성하는 과정도 교과과정에 포함된다. 영어학 파트에서는 음성학,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화용론 등을 다룬다.
Q4. 영문학과 학생들은 어떤 강의를 들을까?
대학교의 커리큘럼은 (교양 제외) 전공 기초, 필수, 선택 과목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공 기초와 필수는 신입생들에게 학과 공부의 바탕이 되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으로, 졸업하기 위해 반드시 수강해야 한다. 필자가 다니는 영문학과는 영문학개론, 언어학개론, 영문학작문 강의를 전공 필수 과목으로 지정해 두었다.
기초를 다지고 나면 전공 선택 과목들을 수강하게 된다. 전공 선택 강의에서는 학문의 세부 분야를 자세하게 다룬다. 필자가 다니는 영문학과의 경우 1900년대 이전 영문학/ 현대 영문학/ 주제별 문학/ 영어학 등의 세부 분야들이 존재한다. 분야별로 들어야 하는 최소 학점이 정해져 있지만, 이를 넘기기만 하면 관심 분야의 강의만 수강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래는 전공 선택 과목의 예시들이다. 세부 분야가 아닌 비슷한 유형끼리 분류하였다.
- 영문학:
- 문학가 한 명에 대한 강의: 셰익스피어, 초서
- 문학 분야 하나에 대한 강의: 현대시, 현대 영국 희곡, 현대 미국 소설 등
- 문학 장르 하나에 대한 강의: 추리 소설 (대중 문학), SF 장르 등
- 영어학:
- 언어와 사회, 언어와 문화
- 문법 관련: 음운론, 화용론, 통사론
- 텍스트 데이터화 관련: 코퍼스 언어학
Q5. 영문학과의 수업 방식 (+평가 방식)
기본적으로 수업 방식은 강의 + 토론식으로 진행된다. 교수님의 설명을 바탕으로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추론해야 하는 강의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학생들을 3~4명의 조로 나누어 작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게 한 뒤 발표시키는 수업 방식이 자주 사용된다. 조를 나누지는 않지만 학생들의 발표를 요구하는 수업도 많다.
창작을 다루는 캡스톤 강의들도 있다. 물론 창작만 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해당 문학 장르와 미학에 대한 에세이들을 읽으며 창작의 기반을 쌓아야 한다. 어느 정도 지식이 쌓이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고통스럽긴 하지만, 교수님의 1:1 피드백을 받으며 ‘내 작품’을 완성하는 수업 방식은 분명 매력적이다.
평가는 보통 서술형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영문학 강의의 경우 작품에 대한 학생의 분석을 적으라고 요구한다. 객관식 문항들도 존재하지만 개론 강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술형의 비중이 훨씬 크다. 반대로 영어학 강의의 경우 문학보다 암기와 객관식 문제 풀이를 요구하는 비중이 훨씬 높다.
Q6. 영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영문학과 학부생으로서 많이 고민했던 질문이다. (학점이 중요하다는 건 당연하므로 그 외적으로 살펴보면) 사실 영문학을 반드시 공부해야 할 이유는 없다. 모든 인문학이 그렇듯 삶이 풍부해지긴 하지만, 무엇으로 삶을 풍요롭게 할지는 개인의 선택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창작자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즐긴다면 영문학과 공부가 재미있을 것이다. 문학 작품을 통해 출판 당시의 시대상을 탐구하고 작가의 창작의도를 살펴보는 것이 영문학과 학생이 하는 공부다. 특히 이야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하게 된다.
이처럼 분석력을 4년간 끊임없이 갈고닦다 보면 분명 문학 작품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 콘텐츠 속의 내러티브도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Q7. 영문학과 졸업 후 취업?
대학원에 진학해 영문학이나 영어학을 계속 공부하거나, 학부를 졸업하고 영어 선생님(교직이수 트랙을 제공하는 대학의 경우)이나 학원 강사 쪽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자유로운 다전공을 지원하기 때문에 많은 동기들이 경영, 경제, 신문방송학, 컴공 등을 복수 전공하거나 CPA, 공무원, 언론고시등 다양한 진로로 나아가는 편이다.
사실 영문학만 배워서 취업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작품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에세이를 작성하고, 때론 발표까지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어 실력이 늘게 되어있다. 영어라는 범용성 있는 언어에 능숙하다는 점은 플러스 요인이다.
마지막으로…
각 대학마다 학과에서 제공하는 교육과정과 프로그램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망하는 대학교의 홈페이지와 요람을 확인해 보는 것이 필수다. 예를 들어 같은 영문학과라도 어떤 곳은 교직이수를 제공하지만 다른 곳은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영문학과에 대해 전반적으로 소개하였다. 다음 글에서는 영문학과 새내기들이 알면 좋을 시험 방식과 공부법에 대해 자세히 다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