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과라면 셰익스피어는 듣고 졸업해야지”라는 허세 가득한 생각에 이끌려 셰익스피어 희곡 강의를 수강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수업도 흥미로웠고 성적도 좋게 마무리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지만, 한 학기 동안 공부하면서 왜 수강신청 경쟁률이 낮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4개월 동안 희곡 3편을 다루고 시험도 세 번 본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겠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작품의 난이도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글에서는 영문학과의 셰익스피어 강의를 수강하면서 배우고 느낀 점과 나름의 접근법을 정리해보았다.
1. 셰익스피어 희곡의 특징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극단에서 배우 겸 극작가로 일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그는 시인으로도 이름을 날렸으니, 정말로 성공적인 문학가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가 쓴 희곡들은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작품들이었다는 것이다. 16~17세기에는 TV나 영화관이 없었고 사람들은 연극이나 동물들의 싸움 따위를 보러 다녔다. 즉,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지금의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오락적인 성격이 강했다.
실제로 그가 쓴 희곡들을 읽다 보면 주말 드라마처럼 인물들의 감정 변화가 갑작스럽게 일어나거나 자극적인 요소들이 들어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는 2시간 안에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 연극 특성상 극을 빠르게 전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지어 셰익스피어는 다작을 하면서 당대 인기가 많았던 이야기들을 본인 스타일로 다시 쓰기도 했으니, 그 결과물은 대중적인 취향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그 때는 저작권에 대한 의식이 희박해서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정리하면, 사랑, 치정극, 복수와 비극을 소재로 등장 인물들의 격정적인 감정들을 무대에서 발산하는 것이 셰익스피어 희곡의 특징이다. 이처럼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감성을 다루다 보니 (워낙 옛날 작품이라 현대인의 관점에서 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을 제외하고) 그의 작품들이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2. 셰익스피어 공부가 어려운 이유
이처럼 셰익스피어 희곡의 줄거리가 대중적이고 이해하기 쉬움에도 공부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는 사용된 언어와 방대한 양의 주석 때문이다. 애초에 희곡들은 익숙하지 않은 초기 현대 영어로 작성되어 있다. 게다가 몇 세기 전에 유행하던 관용 표현들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한 줄 한 줄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유머나 성적 농담, 당시 사회를 반영한 설정 등등…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학자들이 거의 모든 줄에 달아 놓은 주석을 전부 읽는 건 고된 작업이다. 과장을 섞어 공부를 할 당시 연극 대본을 읽는 것인지, 학자들의 연구 수첩을 읽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주석을 꿋꿋이 읽었던 것은 대사를 이해할수록 작품이 더 재미있어졌기 때문이다. 주석을 하나 하나 읽다 보면 반복되는 단어나 표현들이 있다. 그런 경우, 두 번째에는 대사를 더 빠르게 이해할 수 있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주석을 돌파하는 속도가 올라간다. 희곡과 주석 전체를 3번 정도 반복하고 나니 셰익스피어가 의도했던 유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킥킥대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3. 공부 팁: 연극으로 보기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원문으로 공부하는 것이 처음이라면 연극을 몇 번 보는 것을 추천한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책 형식으로 자주 접하다 보니 줄글로 읽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곤 하지만, 애초에 희곡은 연극을 위한 대본이다.
유튜브를 잘 찾아보면 저작권이 풀린 옛날 영화나 극단에서 직접 올려놓은 연극 영상들이 있다. 배우들이 연극 대본의 내용을 실제로 연기하는 것을 보다 보면 희곡에 적힌 문자 만으론 파악할 수 없었던 인물의 대사 속 뉘앙스와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 (창작자마다 조금씩 다른 해석을 보는 재미도 있다) 게다가 희곡을 연극으로 먼저 감상하면 헷갈리는 이름도 등장인물의 얼굴과 함께 정리할 수 있고, 전체적인 줄거리도 기억에 더 잘 남는다. 다만 주의할 점은 리메이크가 아닌 원문을 충실하게 따르는 연극이나 영화를 골라야 한다는 점이다.
맺음말
당연하게도, 한 학기는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파고들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애초에 교수 분들도 평생 연구하는데, 학부생이 희곡 몇 편 읽었다고 엄청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강의를 들은 소득은 분명 있었다. 이상하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꼈던 희곡의 대사들이 강의를 들으면서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주석을 읽는 과정은 고되었지만, 수백년 전의 사람이 쓴 글을 드디어 이해하고, 대사에서 재미를 느꼈을 때의 만족감은 컸다. 이것이 앞으로 셰익스피어의 다른 희곡들에 도전할 때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