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국시대
연맹 왕국에서 진정한 의미의 중앙집권적 국가로 나아간 시기이다.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의 특징으로는 1) 왕위 세습권 확립 2) 율령 반포 3) 불교 공인이 있다. 삼국은 고구려(1C 태조왕), 백제(3C 고이왕), 신라 순으로 중앙집권적 국가로 발돋움했다. 삼국은 서로 비슷한 언어와 문화를 지녔다. 또한 공통적으로 엄격한 법을 시행했다.
왕위 세습과 동시에 부족 족장들을 중앙 귀족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중앙 관제의 정비(관리 복색, 관등 제정)이 이뤄졌다. 불교 공인의 목적은 각기 다른 원시 신앙을 지닌 부족들을 불교라는 하나의 신앙 아래 통합하는 것이었다. 율령은 형법과 행정법으로, 율령의 반포는 법치국가를 선포했다는 뜻이다.
고구려 | 백제 | 신라 | |
왕위 세습 | 1C 태조왕 계루부 고씨 | 3C 고이왕(형제세습) 4C 근초고왕(부자) | 4C 내물마립간 김씨 |
복색, 관등 | 4C 소수림왕 10여 관등 | 3C 고이왕 6좌평 16관등 | 6C 법흥왕 17관등 |
귀족 회의 | 제가회의 | 정사암 회의 (정사를 결정하는 곳) | 화백회의 (만장일치) |
율령 반포 | 소수림왕 | 고이왕 | 법흥왕 |
불교 | 소수림왕 (전진~) | 4C 침류왕 (동진으로부터) | 법흥왕 (이차돈 순교) |
군사 (지방행정) | 5부(수도) 5부(지방) 3경(특수행정) | 5부(수도) 5방(지방) 22담로(특수행정) | 6부 5주 2소경(특수) |
전성기
삼국은 백제, 고구려, 신라 순으로 한강 유역을 차지했다. 한강 유역은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한 영토일 뿐 아니라 중국과 직접 교류하기 유리한 위치였다. 한강 유역의 소유권 변화는 삼국이 한반도의 주도권을 쥐었던 전성기를 보여준다.
4C | 5C | 6C | |
한강 유역 | 백제 | 고구려 | 신라 |
고구려
고구려는 고씨 왕조이며, 총 28대이다. 고구려는 졸본 -> 국내성 -> 평양 이렇게 두 번 천도해 세 곳에 수도를 세웠다. 초기에는 호민(부유층), 하호(농민), 노비의 계급이 존재했으며, 이후 귀족, 평민, 천민의 세습 신분제가 만들어졌다. 평민은 빚을 갚지 못할 시 노비로 전락하기도 했다.
고구려 | |
BC 37 | 고주몽(=동명성왕): 졸본에 고구려 건국 |
1C | 태조왕: 옥저 정복 (경제 기반 확보) 정복 전쟁 -> 왕권 강화 -> 계루부 고씨 왕위 세습 시작 |
2C | 고국천왕: 왕권: 형제-> 부자세습 5부족(순노부~계루부)-> 5행정(동, 서, 남, 북, 중부) 개편 재상 을파소: 진대법 (양곡 춘대추납~ 구휼 제도) |
3C | 위기1: 위나라의 공격 |
4C | 미천왕: (중~5호 16국의 혼란 틈타) 대외 팽창 -> (중국의) 낙랑군 정벌 -> 남쪽으로는 대동강 정벌 |
고국원왕: 전사 위기2: 전연(선비족) + 백제 근초고왕 | |
소수림왕: 불교(전진*과 수교하며 수용) 율령 반포(10여관등) 태학(국립교육기관, 유교, 무예 등) *전진은 전연을 멸망시킨 국가 | |
4~5C | 광개토대왕: 연호 ‘영락’ 거란, 후연과 전쟁 -> 요동, 만주 정벌 광개토 대왕릉비(장수왕 때) 왜 & 가야로부터 신라 구원 -> 금관가야 쇠퇴, 남부 군대 주둔, 호우명 그릇* *경주에서 출토된, 광개토대왕을 기리는 청동 그릇 |
5C | 장수왕: 균형외교(중국의 남북조) 남하정책(427 평양 천도) -> 한성 함락(475 백제 개로왕 X) -> 충주 고구려비(고려대왕 상왕공-신라 매금, 수천) |
7C | 위기3: 6C 말, 수나라의 중국 통일 고구려의 요서 지방 선제공격, 수나라도 고구려 침공(수 문제) 수나라의 공격, 612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수 양제) |
무리한 고구려 원정으로 수 멸망 -> 당나라 등장 -> 당 태종 즉위, 정복 계획 연개소문*: 요동에 천리장성 *연개소문의 정변을 명분으로 당나라가 고구려 침략 | |
~645 | 당나라 공격, 안시성 싸움 |
~ 668 | 나당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 멸망 (연개소문 사후 내부분열) |
고구려 부흥운동: 고연무: 오골성 중심~요동 지역 검모잠과 안승(왕족): 황해도의 한성 중심 신라의 지원을 받아 임진강 유역 전투->패퇴 |
백제
백제는 부여씨 왕조이다. 백제는 한성 -> 웅진(공주) -> 사비(부여) 이렇게 2 번 천도해 세 곳에 수도를 세웠다. 한강 유역을 통해 중국과 교류하며 중국 고전과 한문에 능통했다. 가부장적 사회였다.
백제 | |
BC 18 | 온조: 수도: 하남 위례성에 백제 건국(마한의 소국) 한강 토착 세력 + 고구려계 유민 |
3C | 고이왕: 6좌평, 16관등, 관복(율령), 한 군현과 전쟁, 목지국 정벌 |
4C | 근초고왕: 북쪽으로는 고구려 공격, 평양성에서 고국원왕 X 남쪽으로는 마한 정벌 정복 전쟁-> 왕권 강화-> 부자 세습 -> 중국-백제-가야-왜의 해상교역로: 요서지방에 무역기지 백제군 설치 동진과 국교 규슈와 교류, 일본 칠지도 |
침류왕: 불교 수용(동진) | |
5C | 위기: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고구려가 평양 수복) -> 나-제동맹(433 눌지-비유, 군사적 공수동맹) 개로왕: 고구려가 수도 한성 점령 -> 전사 475 웅진 천도 |
6C | 동성왕: 나-제동맹(소지-동성의 결혼 동맹) 중국 남조와 국교 재개 |
무령왕: 22담로(왕족을 지방관으로) 중국 남조와 교류 -> 무령왕릉 | |
성왕: 백제 부흥 사비(부여)천도 국호 남부여(부여 계승) 5부 5방 (행정/군사 지역 재정비) 나제동맹: 한강 하류 수복, 그러나 동맹을 깬 신라에게 한강 유역 빼앗김 -> 백제 vs 신라의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 | |
7C | 무왕: 서동요(~선화공주)의 주인공 익산 미륵사지 석탑 (탑 일부가 사선으로 잘려나감) |
~660 | 의자왕: 효와 우애~해동증자 칭호, 641 재위 고구려와 연합, 신라 공격 -> 신라의 대야성, 당항성 정복 계백과 5천 결사대: 황산벌전투 나당연합의 공격으로 멸망 |
백제 부흥운동: 흑치상지(임존성 등 200여 성) 왕족 복신과 승려 도침-> 부여풍 추대 + 왜 663 백강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 패퇴 이후 내분으로 실패 |
신라
신라는 금성(경주)에 수도를 세운 뒤 992년 동안 천도한 적 없다. 문무왕은 신라의 마지막 왕(30대)이자 통일 신라의 첫 지배자이다. 연맹왕국에서 귀족국가로 변모하며 도입된 생활밀착형 신분제인 골품제는 2골(성골, 진골) 6두품 (6~최대 아찬, 5, 4~사실상 관직 진출 마지노선, 3, 2, 1)으로 나뉘었다.
신라는 만장일치제인 화백회의와 화랑도를 오래 유지한 씨족사회였다. 화랑도는 진흥왕 때 국가적 조직으로 정비되었다. 화랑도는 화랑(=귀족) + 낭도(=귀족+일반)으로 구성되어 계급 간 갈등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들은 모두 원광대사*의 세속 5계*를 규율삼아 생활했다.
*원광대사: 진평왕의 요청으로 수나라에 원군 요청하는 외교문서 작성 *세속 5계: 사군이충, 사친이효, 교우이신, 임전무퇴, 살생유택(살생은 가려서, 불교의 호국적 성격)
신라 | |
BC 37 | 박혁거세: 사로국 건설(진한의 소국) 박석김 성씨 중 이사금 선출 (거서간=귀인, 차치움=제사장, 이사금=계승자) |
4C | 내물마립간: 낙동강 등 진한 정복-> 왕권 강화-> 김씨 왕위 세습 왕 호칭: 이사금 -> 마립간(=대수장) 위기1: 신라의 정복 활동에 왜, 가야의 공격,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구원-> 고구려 간섭 |
5C | 눌지, 소지 마립간: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에 대항해 나제동맹 (눌지-비유 군사동맹, 소지-동성 결혼) |
6C (500에 재위) | 지증왕: 마립간 -> 왕, 신라라는 국호 채택 주, 군, 현 정비 이사부 장군의 우산국 정벌 (독도, 울릉도) 농경: 우경법 실시, 수리 사업 시장: 동시(동시전=관리 관청) 무덤: 순장X |
법흥왕: 건원 (신라 최초의 독자적 연호) 율령(17관등), 병부, 상대등, 골품제 정비 불교 공인(이차돈 순교) 금관가야 정복 | |
진흥왕: 관산성 전투(성왕X)에서 한강 점령 -> 화랑도 개편 -> 4개 순수비, 단양 적성비 당항성(화성) 점령 대가야 정복 | |
7C | 태종 무열왕(김춘추): 첫 진골 왕(중대 시작) 나당연합 백제 정벌 (멸망) |
~ 676 | 문무왕: 당: 백제 멸망 후 웅진도독부, 신라에 계림도독부 고구려 멸망 후 평양에 안동도호부 -> 신라: 왜와 외교 회복, 백제, 고구려 유민과 협력 나당전쟁: 675 매소성 승리, 676 기벌포(해전) 승리 -> 삼국 통일 -> 통일 신라 (대동강, 원산만이 국경) |
가야
가야의 뿌리는 삼한의 변한이며, 3C에 금관가야 중심으로 연맹 왕국이 되었다. 낙랑군과 왜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며 철기 문화를 꽃피웠으나, 중앙 집권적 국가로 성장은 하지 못했다. 결국 6C에 신라에 복속되었다. 가야의 유적지에서는 덩이쇠, 철제 삼지창, 말 머리 가리개, 갑옷, 투구 등이 발견되었다.
연맹 | 3C 전기가야연맹 | 5C 후기가야연맹 |
핵심 | 금관가야 (경주 -> 김해) | 대가야 (고령) |
4C 말 | 백제, 금관가야, 왜국 연합이 신라 공격 광개토대왕이 신라 구원하며 쇠퇴 | |
멸망 | 6C 법흥왕 때 X | 6C 진흥왕 때 X |
2. 남북국 시대
남쪽으로는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 그리고 북쪽으로는 고구려의 후예 발해가 존재했던 시대이다.
통일 신라
통일 신라는 전제왕권을 확립한 국가였다. 통일 과정에서 당나라와 싸우면서 삼국의 백성들을 포용하였으며, 이후 고구려와 백제의 지배층을 골품제에 편입시켰다. (제한적이지만 관직 가능) 골품제는 제한적으로 수정되었다. 성골이 없어졌고 진골 가문이 6두품으로 강등되는 일도 존재했다. 3~1두품은 사실상 평민이었다.
한편, 통일신라 하대에는 진골귀족 간의 왕위 다툼이 심해지면서 호족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최치원*은 진골만이 권력을 쥘 수 있는 모순을 지적했고, 이는 원종, 애노의 난으로도 이어졌다. *최치원: 당나라 빈공과 합격, <토황소격문>, 신라 복귀 후 왕에게 <계원필경>
통일신라 | |
[4~6C] 상대 | 삼국시대의 신라 박혁거세 -> 성골 왕들 -> 진덕여왕 |
[7~8C] 중대 (무열왕계) | 무열왕(삼국시대 신라) -> 문무왕(삼국 통일) ~문무대왕릉(경주의 해중릉) 9주 5소경 (중앙집권 위한 행정구역) 특별 행정 구역 5소경, 지방 거점 (백제, 고구려 출신 귀족) (중원경=충주~고구려비, 서원경=청주~민정문서) 주-군-현: 지방관 파견, 촌: 토착 세력 촌주 군사: 9서당 10정 (중앙, 지방군 재편) 신문왕: 왕권 강화 김흠돌의 난 -> 진골 귀족 숙청 -> 상대등 권위 하락, 시중* 권위 상승 *시중(중시)은 왕명을 수행하는 집사부의 장관 왕에게 충성하는 인재: 국학(유교 교육 및 관리 양성) 설치 유학자 설총을 필두루 6두품 세력의 급부상 귀족 견제: 사정부=관리 비리 감찰, 외사정=지방 감사관, 상수리=지방의 자제를 수도의 관리로(인질) 녹읍 폐지 -> 관료전(노동력은 귀족에게 X) *녹읍: 조세 수취 + 노동력 징발 / 관료전: 조세 수취 + 성덕왕: 정전 백성에게 보급 혜공왕 (780에 김지정의 난으로 사망) |
[8~10C] 하대 (내물왕계) | 내물 방계 진골: 선덕왕 (27대 선덕여왕과는 다른 인물) 김헌창의 난(장안국, 후백제 규모, 진압 성공) -> 진골귀족 간 왕위다툼: 상대등(진골귀족 대표자)의 권위 상승, 시중(왕 보좌 행정, 귀족견제)의 권위 하락 -> 왕권 하락, 녹읍 부활 -> 귀족들의 대농장, 사병 -> 수탈로 농민 봉기 6두품 권위도 하락, 호족(성주, 장군)의 급부상 호족 취향인 불교(선종)과 풍수지리의 유행 |
경순왕: 무력한 왕권 호족 난립: 지방에서 힘을 키운 (밀려난) 중앙 귀족 무역을 통해 성장한 해상 세력 군사 요충지의 군진 세력 지방의 토착 촌주 세력 1세대: 장보고 (법화원, 청해진) 2세대: 견훤(900 완산주: 후백제) 궁예(901 송악(개성): 후고구려) 왕건(철원: 고려) |
발해
발해는 대씨 왕조로, 고구려를 계승하였다. 발해의 외교 문서(고려 왕이라 칭함), 돌사자상, 무덤 양식, 온돌 양식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국가는 이원적 민족으로 구성되어 소수의 고구려 출신들이 상위 계급을 차지했다. 말갈족도 포함되었으나, 권력은 잡지 못했다. 활, 기마, 격구를 즐겨 했고 여성의 지위는 높은 편으로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었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와는 무왕 때까지 대립하다 아들인 문왕 때 친선 관계가 되었다. 당나라 멸망 후 거란(요)에 의해 멸망했다.
(7, 8~9C) | 발해 |
698 |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발해 건국 고구려 유민 + 말갈 |
무왕 연호: 인안 당나라의 견제: 흑수말갈, 신라 통해 발해의 대응: 732 장문휴 -> 산둥반도의 등주성* 공격: *수, 당의 고구려 침략 수군 출격지 당에서 신라에 원군 요청, 김사란(과 10만명)은 폭설에 퇴각 흑수말갈 복속, 돌궐, 일본과 친교 | |
문왕 연호: 대흥, ‘고려국왕 대흠무’ 당과 친선 관계, 신라와 사신 교환 국왕 중심 중앙 집권: 친중국 노선: 3성 6부(~당송제 중앙통치조직) *다만 운영은 독자적으로 3성= 정당성, 중대성, 선조성 +중정대-감찰, 문적원-비서, 주자감-교육 (정당성 아래) 6부= 좌사정(충, 인, 의) + 우사정(지, 예, 신) 딸 정혜 공주, 정효 공주 사망… 공주들의 무덤 묘지석에 그 슬픔이 기록되어 있다. | |
9C (전성기) | 선왕: 연호: 건흥 수도: 상경성 전성기, 해동성국 요동, 연해주 확보 -> 5경 15부 62주 경=전략적 요충지, 15부 62주-현: 지방관 파견, 촌락: 촌장 |
(10C) 926 | 주변국: 신라-> 후삼국 당-> 지방 세력, 농민봉기로 멸망 -> 거란 등장 발해: 내분 와중에 거란(요)에 멸망 그 외에도 후발해, 정안국, 대발해 등 부흥 운동 도중에 발해 왕자는 유민들과 고려로 망명 금나라 초에 끝(금의 발해 유민 동화 정책 등) |
경제
삼국은 왕토 사상에 따라 농민들에게 조세와 특산물을 받았고 귀족들에게 땅을 나눠주었다. 왕족과 공신에게는 식읍이, 관리들에게는 녹읍이 지급되었다. 귀족들은 하사받은 땅의 조세권도 얻었다. 농업의 비중이 높아 철제 농기구를 보급하고 우경을 장려하며 관개 농업과 황무지 개간 등 농업생산량 증대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거름을 주는 시비법은 발달하지 못해 지력이 회복될 때까지 땅을 놔둬야 했다.
수공업과 상업도 점점 발달하였다. 왕실은 관청에 수공업 장인들을 소속시켜 물품을 조달했다. 한편, 행상은 지방 특산물을 매매했다. 무역은 주로 공무역으로, 보통 인삼, 직물, 금, 은을 수출하고 비단, 도자기, 서적을 수입했다.
고구려 | 백제 | 신라 | |
무역 상대 | 중국의 남북조 북방 유목 민족 | 중국 남조 왜 | 중국 |
무역로 | 중국-가야-왜 서남해 교역로 | 고구려, 백제 거쳐서 -> 한강 유역 차지 후 직접 |
통일신라 | 발해 | |
경제 | 농업(밭>논) 목축: 수출~솔빈의 말 수렵: 모피, 녹용, 사향 수공업(금속, 직물, 도자기) | |
조세 | 민정문서(=신라 장적): 서원경(청주)의 촌락 기록, 일본 도다이 사에서 발견 1) 3년마다 갱신: 2) 촌락 인구, 토지 종류와 면적, 가축 수, 수목의 종류와 수 3) 호구: 구=가구 수, 남녀와 연령~6등 호=주택, 9등급 조세: 수확량의 1/10, (남의 토지~주인에게 수확량의 1/2) 공물: 촌락 단위, 특산물 향, 부곡에서는 특산물 더 많이 역: 군역 등 | 조세, 공물, 역 |
토지 | 귀족, 관료의 수조권: 녹읍-> 관료전 + 백성~정전* -> 8C 후반 녹읍 부활 *정전: 성덕왕 때 백성에게 지급 | |
시장 | 지증왕 때 동시(전) ->이후 경주에 서시와 남시 추가 설치 + 지방 시장 | |
무역 | 품목: 견직물, 베, 금은 세공품 수출 비단, 서적, 사치품 수입 무역: 일본과 공무역, 사무역 국제 무역항 울산항: 이슬람 상인~아라비아 유리 중국의 신라방, 신라원 9C 전반(호족) 장보고의 법화원, 청해진(완도) | 무역로: 5개 교통로 거란도 당(2): 영주도, 압록도 신라도(상설 교통로) 일본도 발해 사신용 여관: 발해관 |
문화
불교, 유교
삼국은 왕 중심의 고대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사회 통합이 가능한 불교를 수용했다. 왕권 강화를 위해 왕즉불(왕=부처) 사상을 채택했다. 귀족들도 업설(=윤회사상)을 통해 귀족 중심의 신분 질서를 뒷받침했다. 이에 대규모 사찰이 건설되었고 법회를 통해 국가의 복을 기원하기도 했다. 미륵신앙도 유행했다.
한편, 삼국은 유교를 통해 왕에게 충성하는 인재를 육성했다. 임신서기석은 신라의 청년 두 명이 임신년에 맹세한 것을 기록한 비석으로, 3년 안에 유교 경전을 공부하겠다는 약속 또한 적혀 있다.
고구려 | 백제 | 신라 | |
불교 | 소수림왕(전진) | 침류왕(동진) | 법흥왕 (이차돈) 불교식 이름: 진덕여왕 등 |
유교 | 중앙: 태학 (소수림왕) 지방: 경당 (장수왕, 한학 +무술) | 박사 (교육 관직 제도): 오경박사(=유학) 의박사(=의학) 역박사(=천문, 역법) 사택지적비(의자왕 때, 사택지적의 망국한탄) | 임신서기석 |
도교 | 연개소문: 귀족-불교세력 견제 -> 도교 장려 신선, 무위자연 사신도(현무, 백호, 청룡, 주작) | 금동대향로 (부여) 산수문전 (산수문~전) | 화랑도 (유,불,도교의 혼합) |
역사 | <유기> 100권 -> 태학박사 이문진이 집약: <신집> 5권 (영양왕) | 고흥: <서기> (근초고왕) | 거칠부: <국사> (진흥왕) |
통일 신라 때는 불교가 대중화되었다. 통일 신라 말에는 교리와 계율 중심의 교종이 아닌 개인의 수양을 추구하는 선종이 유행하였다. 특히 호족들이 이를 선호했다.
통일신라 | 발해 | |
불교 | 불교의 대중화 원효: 원융회통, 일심, 십문 화쟁론 = 융합, 화합으로 하나가 되어요 ~ 종파 갈등 멈춰! -> 정토룡 (아미타)=내세의 극락 불교의 교리를 쉬운 노래로. 의상: 당으로 불교 유학 다녀옴. = 문자 경전을 읽어 깨달음, 계급(진골) -> 신라 화엄종(일즉사, 다즉일) 부석사, 관세음보살=현세의 구원 혜초: “왕오천축국전” (인도 불교 성지순례) 선종 유행: 9산선문(사원), 승탑 = 개인의 수양을 통해 깨달음 ~호족 | 고구려의 불교 계승 수도(상경, 중경, 동경) 일대 고구려 양식의 절터 발굴 |
유교 | 국학 설립(신문왕) -> 태학(박사, 조교- 경덕왕) 독서삼품과(원성왕): 하: “곡례”, “호경” 중: “논어”, “효경” 상: “논어”, “효경”+ “춘추좌씨전”, “예기”, “문선” 6두품: 1) (무열왕~신문왕) 강수: 외교 문서 (능력자) 2) (신문왕) 설총: 이두(한자로 우리말 표현하는 방법), “화양계” 3) 최치원: 빈공과 합격, 계원필경 4) (진골) 김대문: “화랑세기”, “고승전”, “한산기” (자주, 주체 강조) 신라 말: 도당 유학생, 빈공과 급제생~최치원 | 주자감 (=문왕 때 설립된 유학 교육기관) 당에 유학생 파견 |
도교 | 귀족 사치문화에 대한 반발 -> 도교와 노장사상 발달 호족: 풍수지리설을 명분으로 |
왜와의 교류
일본과 가까웠던 백제는 일본에 박사들을 파견해 유교, 의학, 천문, 역법을 전수했다. 또한, 불교와 불상도 전달했다. 고구려는 불교, 회화를 전달하였으며 대표적인 인물들로 승려 담징과 혜자가 있다. 신라는 조선술, 축제술을, 가야는 철기와 토기를 전수했다.
왜와의 교류 | 고구려 | 백제 | 신라 |
[6말~7C] 아스카 시대 | 승려 담징: 종이, 먹 제조기술 유교 오경 전수 승려 혜자: 쇼토쿠 태자의 스승 일본 다카마쓰 고분 벽화 (고구려 수산리 벽화와 유사) 호류 사 금당 벽화: 고구려 승려 담징 작품 | 근초고왕: 아직기, 왕인 파견 칠지도 일본 나라 현 호류 사: 백제 장인들 건축 참여 백제관음상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 일본 고류사 목조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 조선술, 축제술 (한인의 연못~농업용) / 가야 이주민: 스에키 토기* *흑청색의 단단한 일본 토기 |
하쿠호 문화 | 통일신라의 유교, 불교 |
유물, 유적
삼국 시대와 남북국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 유적지이다. 삼국 시대에는 내세에 대한 믿음으로 (지배층의) 고분에 신경을 썼다.
고구려 | 백제 | 신라 | |
과학 | 천문도 (*조선 태조 때의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류) ~ 왕권 강화 및 농업용 | 칠지도 (왜와의 관계) | 금관 천문: 첨성대(선덕여왕) |
건축 | 평양 안학궁(장수왕) | 익산 미륵사(무왕) | 황룡사(진흥왕) 분황사(선덕여왕) |
고분 | 돌무지무덤– 장군총 (위가 평평한 피라미드) 굴식 돌방무덤 (입구, 벽화) (반구 묘 안에 이글루) 모줄임천장 구조 – 강서대묘 | 고구려 양식과 유사 계단식 돌무지무덤– 석촌동 (위에 풀 자란 제단 모양) 굴식 돌방무덤 + 벽돌무덤 (무령왕릉) ~ 중국 남조 영향 | 돌무지덧널무덤 (천마총) (나무 덧널을 묻고 위에 돌과 흙으로 봉분을 쌓아 도굴이 어려운 구조) |
불상 | 금동연가 7년명 여래 입상 (황금의 부채 연상) |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 (석벽의 미소 짓는 불상)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백제, 신라 중 어디 것인지 모름 |
탑 | X 목탑이라 취약. | 익산 미륵사지 석탑 (무왕, 목탑 -> 석탑, 탑 일부가 사선으로 잘려나감)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평제탑의 오명…) | 분황사 모전석탑 (벽돌 모양 돌로 쌓음) 황룡사 9층 목탑 (호국, 고려~몽골에 의해 불타버림) |
서예 회화 음악 | 왕산악: 중국의 칠현금 -> 거문고로 개량 | 천마총 천마도(5C) /가야의 우륵: “가야금 12곡” |
통일신라 | 발해 | |
과학 | 범종: – 상원사 동종 (성덕왕) – 성덕대왕신종: 금속주조기술 (아들 경덕왕->손자 혜공왕 때 완성) 인쇄, 종이: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 |
건축 | 경주 불국사, 석굴암 (경덕왕 대 대규모로 다시 지음) 안압지 (동궁과 월지) | 상경용천부: – 주작대로: 수도 궁궐 유적지의 도로, 당의 영향을 받음 – 궁궐 터의 온돌: 고구려 계승 연해주 크라스키노 유적 |
고분 | 굴식 돌방무덤(김유신 묘) 이후 불교 영향으로 화장 유행, 작아짐. 둘레돌 + 12지 신상 조각 | 정혜공주(문왕) 묘: 고구려 양식 굴식 돌방무덤, 모줄임천장 구조 돌사자상 정효공주(문왕) 묘: 벽돌무덤, 벽화 고구려 + 당 양식 |
불상 | 경주 석굴암 본존불(중대) 철원 도피안사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신라 하대) | 이불병좌상 (두 명의 부처가 나란히 앉은 불상: 석가모니, 다보불) |
탑 | 불국사 3층 석탑 (=석가, 무영탑) (2중 기단 위에 3층을 쌓는 양식,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발견) 다보탑 양양 진천사지 3층석탑 (탑 정면 3면에 조각) 철감선사탑 (승려 유골 봉안) | 벽돌 전탑- 영광탑 석등 |
서예 회화 음악 | 명필가 김생 화가 솔거 향가 “삼대목”(9C) |
티켓 조각 (2/6)
△ 본 저작물은 “문화포털” 에서 서비스 되는 ‘창덕궁 금천교 난간’ 전통문양을 활용하였습니다.